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멕시코-아르헨티나 관계 (문단 편집) === 20세기 이전 === 양국은 스페인의 지배를 받기 이전에는 [[아메리카 원주민]]들이 고대부터 멕시코 일대와 남아메리카 일대에 정착했다. 멕시코 일대에는 [[아즈텍 문명]], [[마야 문명]] 등이 생겨났다. 그리고 문화적으로 많은 발전을 이뤘다. 반면, 아르헨티나 일대에는 문명이 발달하지 못했다. 다만, 아르헨티나 북서부 일대가 [[잉카 문명]]의 일부였다. 당시에는 지리적으로 멀었고 교류가 매우 제한적이었다. 양지역은 스페인의 정복과 식민지배를 받았다. 스페인의 지배하에서 스페인어와 [[천주교]]가 보급되었지만, 차이점도 생겨났다. 멕시코 일대는 [[누에바에스파냐]]는 비옥한 멕시코 고원 지대 및 광산 운영을 바탕으로 대항해시대 당시 스페인의 핵심 식민지였던 반면 아르헨티나에 해당하는 지역은 비교적 강수량이 적어서 개발이 잘 이루어지지 못했다. 게다가 [[마푸체]]의 저항도 매우 심했기 때문에 [[파타고니아]] 남부는 19세기까지 스페인의 영향을 받지 않는 독자적인 세력으로 남았다. 19세기 초에 들어서면서 라틴 아메리카 각 지역은 스페인으로부터 독립하려는 움직임이 일어났다. 멕시코에서는 미겔 이달고 신부의 주도하에서 독립운동이 일어났고, 리오 데 라플라타(아르헨티나) 지역에서도 [[호세 데 산 마르틴]]의 주도하에 독립운동이 일어났다. 스페인군은 양지역의 독립운동을 진압했지만, 독립열기가 잇따라 일어나면서 멕시코는 1821년에 [[멕시코 제국]]으로 독립했다. 아르헨티나도 스페인의 지배에서 벗어나 독립한 뒤, 양국은 수교했다. 그러나 독립 이후 양국은 서로 다른 길을 걷게 되었다. 아르헨티나는 영국 자본의 투자 지원을 바탕으로 [[팜파스]] 초원을 개간하고 팜파스 초원에서 방목된 소의 고기를 냉동시켜 유럽으로 판매하는 시스템이 갖추어짐과 동시에 유럽으로부터 대량 이민을 받으면서 선진국으로 거듭난 반면 멕시코는 스페인이나 중국 출신 이주민들을 학살 혹은 추방하면서 쇄국 정책을 벌이고 북부 영토 내 [[독일계 멕시코인|독일계 이민자들]]을 대상으로 스페인어와 가톨릭을 강요하였다. 멕시코의 북부 지방 행정 장악력이 부족했던 상태에서 독일계/영국계 개신교도 이민자들에 대한 가톨릭 강요 정책은 결국 미국의 개입을 불러들였고 멕시코는 [[미멕전쟁]]으로 북부 영토 상당수를 상실한 이후 빈곤 국가로 전락하였다. 19세기 후반 남미의 아르헨티나가 웬만한 유럽 국가들의 1인당 국민 소득을 추월하던 당시, 멕시코의 1인당 국민 소득은 미국, 영국의 1/10 수준에 불과하였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